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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분야

(과학) 금융시장 주무르는 방정식 전문가

우리투자증권
차기현 우리투자증권 이사

점심 시간이 막 지난 시간. 
여의도 우리투자증권 트레이딩룸은 마치 언제 휴식시간이었냐는 듯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직원들은 책상마다 대여섯 대의 모니터를 쌓아 두고 분주하게 모니터에 나타난 수치 변화를 확인하고 있었다.

“주식시장이 문을 닫는 오후 3시까지는 늘 이렇게 긴장 상태를 유지합니다. 
주식시장에는 점심 시간이 따로 없기 때문에 점심도 간단히 때우는 경우가 많아요.”

트레이딩룸에서 만난 우리투자증권 차기현 이사는 일반적인 회사원들과는 조금 다른 증권맨들의 하루 일과를 소개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보통 아침 7시에서 8시 사이에 출근을 합니다. 
출근한 뒤에는 밤사이 해외 금융시장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확인하죠. 
그리고 8시부터는 오늘 금융상품을 어떻게 운용할지 계획을 세워요. 
9시에 주식시장이 열리면 장이 끝날 때까지 긴장을 놓지 못합니다.”

차 이사가 설명한 증권맨의 일과는 마치 운동 선수들의 하루와 비슷해 보였다. 
운동선수들도 경기 전에 작전 회의를 하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쉼 없이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축구에 비유하면 현재 차 이사가 맡고 있는 포지션은 감독이다. 
수와 코치까지 두루 거친 스타 플레이어 출신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증권계에 첫 발을 내디딘 차 이사는 금융상품을 분석하고 설계하는 일과, 금융상품을 거래하는 일을 두루 경험했다. 
그리고 지금은 매일 금융시장에서 일어나는 변수를 토대로 직접 경기를 뛰는 선수들인 부하직원들에게 상품 운용 전략을 지시하고 새로운 상품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수학 전공자가 왜 금융회사에?

그런데 놀랍게도 차 이사가 이끄는 후배들은 대부분이 이공계 출신이다. 
그 중에서도 차 이사를 포함해 많은 직원이 수학을 전공했다.
이사는 대다수의 증권회사에서 수학과 출신들이 ‘퀀트(Quant)’와 ‘트레이더(Trader)’로 활약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금융상품의 기본은 수학입니다. 
따라서 상품을 설계하는 퀀트는 물론, 고객들이 돈을 운용해서 수익을 거두는 트레이더도 금융상품의 수학적인 원리를 알아야 시시각각 변하는 금융시장에서 효과적으로 대처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퀀트와 트레이더는 어떤 일을 할까? 
퀀트는 ‘Quantitative Analyst(계량 분석가)’를 줄인 말로, 수학을 무기로 금융상품을 설계하고 분석하는 일을 한다. 
금융상품에 대한 광고와 뉴스를 눈여겨보면 ‘파생상품’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퀀트는 다양한 파생상품을 설계한다.

파생상품이란 예금과 주식 같은 기본적인 금융상품을 조합해서 만든 새로운 금융상품으로, ‘주가연계증권(ELS)’이라는 상품이 대표적인 예다. 
퀀트들은 다양한 방정식을 이용해서 파생상품을 설계하고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상품 가격을 결정하는 일을 한다.

반면에 트레이더들은 퀀트들이 만든 상품에 고객들이 투자한 돈을 실제로 운용하는 역할을 한다. 
아침부터 주식시장이 끝나는 시간까지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매 순간 변하는 주식의 오르내림에 따라 얼마나 사고 팔지를 결정한다. 
트레이더들은 직접적으로 수학 계산을 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담당하는 상품의 원리를 알아야 효과적으로 상품을 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학과 출신들에게 유리하다.

지난 2002년 동양증권에 입사했을 때 차 이사가 맡았던 역할은 금융 상품을 분석하는 퀀트였다. 
그리고 2004년 우리투자증권으로 옮겨온 뒤에는 주가연계증권(ELS) 등의 상품을 설계하고 직접 상품을 운용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맡아왔다.

축구선수를 꿈꾸던 소년, 수학자를 거쳐 금융맨으로 변신

지금은 증권업계에서 누구나 알 만한 전문가가 되었지만, 차 이사의 원래 꿈은 증권맨이 아니었다. 
박사과정에 들어갈 때만 해도 교수가 되어서 평생 수학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큰 꿈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력이 떨어지면서 축구보다 공부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히 수학을 좋아했는데, 그렇다고 경시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뛰어나지는 않았어요. 
중·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과학자가 되는 걸 꿈꿨죠.”

대학 입시 때 물리와 수학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수학을 선택한 차기현 이사는 석사과정 때까지 미분기하학이라는 순수수학 분야를 공부했다. 
하지만 순수수학이 너무 어렵고 적성에도 잘 맞지 않는다는 걸 느낀 뒤, 포스텍(POSTECH) 수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하면서 응용수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진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구형건 교수를 만났다.

“제가 공부하던 주제는 응용수학의 여러 문제 중 하나인 ‘역문제(Inverse Problem)’였어요. 
어떤 수식을 보면 변수와 상수가 있잖아요?
역문제란 쉽게 말해서 여러 실험 결과값들을 이용해서 정해지지 않았던 상수값을 알아내는 문제예요. 
실생활에 이용되고 있는 자기공명영상(MRI) 장치와 컴퓨터단층촬영(CT) 장치가 역문제를 이용한 의료기기에요. 
사람의 몸 속에 직접 들어가지 않고 전자기파를 쏜 뒤 돌아온 결과(data)를 가지고 몸 속 구조를 복원하는 원리죠. 
그런데 구형건 교수님을 만나서 제 박사학위 논문 주제였던 ‘역문제’가 금융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답니다.”

그때부터 금융수학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한 차 이사는 구형건 교수가 창업한 피스트글로벌이라는 금융 벤처기업에도 참여했다. 
지만 그때까지도 학계에 남아서 금융수학을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게다가 이화여대 수학과 연구교수라는 안정적인 자리도 있었다.

그랬던 차기현 이사가 교수 자리를 박차고 ‘현장’에 뛰어든 이유는 바로 자신이 연구한 내용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학문의 세계가 아닌, 실전에서 금융수학을 경험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1세대 퀀트들

당시 증권가는 이제 막 주가연계증권(ELS)을 판매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퀀트라는 말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이 수학 전공자들의 역할에 의구심을 품고 있을 때였다. 
게다가 상품을 분석하고 설계하기 위한 기본적인 환경도 마련돼 있지 않았다. 
파생상품을 설계하려면 기본적으로 수많은 데이터를 계산할 수 있는 컴퓨터가 필요한데, 이런 시스템조차 없었던 것이다.

차 이사를 비롯한 1세대 퀀트들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을 하면서 밤을 새워가며 직접 컴퓨터 시스템을 설계하고 동시에 상품을 개발했다. 
이를 위해 마치 자동차회사 기술자들이 경쟁사의 자동차를 일일이 분해해서 연구하는 것처럼, 외국 증권회사의 상품을 분석하고 비슷한 상품을 직접 설계해 보기도 했다. 
모르는 것들이 나올 때는 외국 회사에 직접 물어보기도 했지만 거절 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외국 논문을 뒤져가며 시스템을 개발했고, 결국 외국 증권회사와 비교해도 손색 없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차 이사는 자신과 1세대 퀀트들이 이룬 업적을 설명하면서 “뿌듯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지난 10년 동안 이어져 온 파생상품 개발 및 운용 시스템 개발 과정은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학창시절 어려운 문제를 친구들과 함께 풀듯이 여러 퀀트들이 함께 난관을 극복해 온 덕분에 오늘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1세대 퀀트들의 땀과 열정 덕분에 오늘날 우리나라 주가연계증권(ESL) 시장의 규모는 1년에 60조씩 발행되는 세계 최대 시장으로 성장했다.

끈기 있는 사람은 ‘퀀트’, 무던한 사람은 ‘트레이더’가 잘 어울려

이렇게 1세대 퀀트로 지난 10년 이상 실전에서 퀀트와 트레이더 업무를 두루 경험한 차 이사가 느낀 증권맨 세계의 매력은 무엇일까?

“지난 12년 동안 현장의 매력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학문 세계와 달리 이곳에서는 내가 한 일에 대한 결과가 1초만 지나도 바로 나타나죠.
수학 문제와 똑같은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문제를 못 풀 수도 있지만, 문제를 풀었을 때 그 기쁨은 엄청나죠.”

그는 또 이전까지 없었던 상품을 처음으로 개발하고 운용할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상품을 만드는 모든 과정이 수학 문제를 풀고, 그 결과를 직접 설계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확인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 역시 수학 문제를 풀었을 때와 비슷한 희열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고객들이 믿고 맡긴 엄청난 규모의 돈을 담당한다는 사실에서 책임감과 함께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차 이사는 어떤 사람이 퀀트와 트레이더에 어울리는지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설명했다.

“퀀트는 진득하게 앉아서 무언가를 분석하고 계산하는 업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지구력과 끈기가 필요합니다. 
반면에 트레이더는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낙천적이고 무던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요.
자기가 내린 결정 때문에 큰 돈을 잃을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다음날 다시 큰 수익을 거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이 매력입니다. 
그러니 순간적인 결과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이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지요.”

차 이사는 자신의 성격이 퀀트보다는 트레이더에 더 어울린다고 설명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Tomorrow is another day)”는 그의 좌우명에서 알 수 있듯이 결과에 대한 부담감을 크게 느끼지 않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는 퀀트와 트레이더를 꿈꾸는 후배들이 자신의 성격을 잘 돌아보고 진로를 선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대 가라는 말보다 내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차기현 이사는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해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도 무턱대고 부모님이나 주변에서 추천하는 길을 따라가기보다는 조언을 참고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이야기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의대나 공대를 가라는 말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저는 별로 내키지가 않았어요. 
사가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는 하지만, 수학과 과학이 더 좋았어요. 
연의 규칙을 찾는 과학자가 더 재미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당시에는 자연과학과 수학을 전공하면 장래가 밝다는 얘기도 많았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했고, 그 결과로 지금 이 자리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차 이사는 자녀에게도 진로를 강요하지 않는다고 한다. 
때때로 하나뿐인 아들에게 수학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그것도 자녀가 원하지 않으면 하지 않을 생각이다. 
자기가 하고 싶을 때 가르쳐야 최고의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공부는 호기심에서 시작해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학원에서 주입식으로 하는 공부는 오히려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저는 학원에 다니는 것보다 자기가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 몰두하는 걸 추천하고 싶어요.”

성공의 비밀은 야망이 아닌 즐기는 것

금융맨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차 이사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차 이사는 기회가 된다면 금융상품 영업을 거쳐서 최종적으로는 한 금융회사를 이끄는 리더가 돼 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수학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투자하는 세계적인 투자회사의 대표이자 수학자인 제임스 사이먼스처럼 수학을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수학 알고리즘을 이용한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어요. 
저는 수학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시장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해서 수익을 거둬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이 금융시장에 수학이 미치는 영향력과 퀀트의 중요성을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요?”

동시에 차 이사는 되도록 많은 책을 읽고 싶다는 ‘책 욕심’도 드러냈다. 
트레이더들에게 중요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 5,000권의 책을 읽어 보겠다는 목표로 발전했다. 
그래서 차 이사는 지금도 일주일에 두 권씩 역사와 철학 등 관심 있는 분야의 책을 읽고 있다.

누군가가 5,000권의 책을 읽고 금융회사를 이끄는 리더가 되고 싶다는 꿈을 말한다면 ‘그저 꿈이려니’하고 생각하겠지만, 차 이사의 말은 왠지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이룬 성과도 성과지만, 그것이 ‘억지로 애를 써서’ 무언가를 얻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즐기면서’ 일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힘쓰고 애써 이루려는 노력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지만 즐기는 사람은 계속 즐기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117&cur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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