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인 인터뷰

여러 분야의 진로∙직업 전문가와 사회 각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분들의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직업 세계를 확인하고 진로선택 방법을 알아보세요.

커리어패스

창작분야

(창직) 음악 교육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요

유유자적살롱
이충한 뮤지션

유유자적 살롱, 줄여서 유자살롱. 음악 하는 사회적 기업 유자살롱은 음악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그들은 무기력하고 의욕 없는 청소년들, 직장인들, 그리고 일반인에게 음악으로 힘을 불어 넣어준다. 
대학에서는 사회학을 공부하고음반을 내기도 했던 충한 씨, 졸업 후에는 대기업을 거쳐 지금 유자살롱으로 행복한 일과 생활을 누리고 있다.

둥둥 떠다니듯 발을 붙이지 못하는 무중력 청소년을 돕는 회사

유자살롱은 ‘유유자적살롱’을 줄여 부르는 이름이다. 
‘무중력 청소년’들을 음악으로 도와주는 사회적 기업이다. 
무중력 청소년이라는 건 탈학교 비활동 청소년, 즉 학교를 그만둔 문제 청소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밖에서 소위 말하는 나쁜 일들을 하는 청소년들은 그래도 친구들이 있다는 점에서 유자살롱이 보기에는 그나마 낫다. 
유자살롱이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친구들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그래서 친구도 없는 청소년들이다.

집에서 혼자 지낸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우선 혼자 있다 보면 외롭다. 
외롭다 보면 우울해진다. 
그러다 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세 가지 덫에 걸리면 헤어 나오기 쉽지 않다. 
유자살롱은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그중에서도 청소년에 주목해서 탈학교 비활동 상태에 있는 청소년들을 돌본다.

이런 청소년들을 흔히 은둔형 외톨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라고 부르는데 일본의 공식 통계로는 70만 명 정도가 있다고 한다. 
또 이와 비슷한 NEET라는 것도 있다. Not in Employment, Education or Training의 약자로 6개월 이상 취직이 되어 있지도 않고, 구직활동도 안 하고 그렇다고 학교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직업훈련을 하고 있지도 않은 사람들을 뜻한다. 
이런 NEET의 숫자가 일본에서는 15세부터 29세까지의 인구 중 9.9%에 달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6개월 이상 있었다는 사람이 10%에 가깝다는 건 굉장히 큰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국제노동기구에서 각 나라들의 NEET 비율을 발표했는데 한국은 그 비율이 19.2%라고 한다. 
일본보다도 두 배 정도 높다. 
얼마나 정확할진 모르겠지만 OECD 국가들 중에서도 무척 높은 수준이다.

유자살롱은 히키코모리나 은둔형 외톨이라는 말은 좀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탈학교 비활동 상태의 심각성은 알리면서도 가능성이라든지 좀 밝은 부분도 얘기해줄 수 있는 이름을 생각하기로 했다. 
충한 씨는 자신이 10대 때 어땠나를 생각해봤다. 
발에 땅을 딛지 못 하고 그냥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정말 우주 한복판에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외롭고 어둡고 힘든 때였다. 
마치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과 같다고 해서 무중력청소년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뮤지션들을 위해 만든 회사예요

처음 시작은 뮤지션들을 위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음악 시장이 아이돌 중심으로 돌아가고 다양성이 없어서 많은 뮤지션들이 먹고 사는게 너무 힘들다. 
음악을 진지하게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먹고 살 수가 없다. 
그래서 중국집 배달을 하고 편의점 알바를 한다. 
그러면 음악 할 시간이 점점 줄어드니까 음악을 잘하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래서 충한 씨는 이 사람들이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저녁에는 자기 음악을 할 수 있는 그런 직장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자살롱을 만들었다.

유자살롱을 만들어놓고 한 1년 정도 지났는데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한 3년 했던 학생이 찾아왔다. 
처음에 그 친구는 사람 눈을 못 쳐다봤다. 사회랑 소통을 거의 안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3개월 정도 그냥 재밌게 음악하면서 뛰어놀다 보니 정말 멀쩡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이 일이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무중력 청소년들에 대한 사업을 하려고 하니 정말 이건 사회적 기업으로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돈을 많이 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국가기관이라든지 다른 곳에서 지원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 간섭을 많이 받게 되고 처음의 좋은 목적이 흔들리기 쉽기 때문이다.

지원을 받지 않으려니 돈을 벌어야 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돈을 벌면서 이 친구들을 계속 도와주는 일을 하겠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기업의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들이 정말 하고 싶은 사회적 기업은 굉장히 혁신적인 기업이었다. 
사회의 니즈가 있는데 그 니즈를 아무도 해결하고 있지 않을 때 이들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게 혁신이라고 생각했다.

집에만 있던 아이였지만 음악이 유일한 친구였어요

사실 충한 씨는 유치원 때부터 유치원이 싫었다고 한다. 
그래서 집에만 있었다. 
그런 충한 씨가 걱정돼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어머니를 따라 피아노 학원에 갔다. 
그때 처음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큰 문제없이 지냈다.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고 반장도 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그렇게 잘 지내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열심히 살았던 것은 어머니의 몸이 좋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한번은 의사가 어머니가 건강해지려면 원하는 것을 하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 후로 어머니는 좋아하시던 그림을 시작했고 밤 10시 전에 집에 들어오는 일이 드물 정도로 몰두하셨다.

그래서 충한 씨는 집에 항상 혼자 있었다. 
할 수 있는 게 음악 듣는 것 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라디오를 틀어놓고 음악만 들었다. 
그러나 6학년이 되었을 때는 악기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혼자 피아노와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우울한 학창시절을 지나 대학으로

충한 씨는 초등학교 4~5학년 정도부터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그래서인지 항상 좀 우울했다고 한다. 
그러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충한 씨에게 많이 마음을 써주셨다. 
면담도 매일매일 해주셨는데 그 분이 1학기만 마치고 전교조 사태로 그만두게 된다. 
그때 충한 씨는 사회가 너무 싫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회에 대해서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책도 많이 찾아 읽고 신문도 사다 봤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점점 더 친구들하고는 멀어졌다. 
중학교 1학년, 2학년 아이들이 그렇게 정치의식이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힘들게 보냈다.

다행히 자퇴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그냥 지내다 졸업을 해서 사회학과에 갔다. 
그곳에 가니 사회의식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다. 
사회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있거나 조금 사회성이 결여된 애들이 많았던 것이다.

음악은 오랫동안 해왔으니까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3학년 때 기회가 와서 음반 프로듀서이자 작곡자로서 데뷔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군대 갔다 와서 신인 아이돌들 작업을 좀 많이 하게 되었다.

그 때는 MP3가 배포되어 가요시장이 막 무너지던 때여서 음악으로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취직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삼성에서 창의적인 인력을 뽑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충한 씨는 음반 작업을 비롯해 활동을 많이 한 덕분에 삼성카드에 들어갔다.

연봉 높은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재미없었어요

삼성카드는 삼성에서 연봉을 제일 많이 주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무척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니 신입사원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너무나 다 틀에 박힌 일들이었다. 
그래서 정말 간곡하게 부탁을 해서 광고팀에 갔다. 
그런데도 재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신입사원이 무언가를 하려면 10년 정도 후에, 그러니까 과장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런데 10년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2년 2개월 만에 퇴사를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들어가 문화학을 전공하면서 음반작업과 드라마음악, 뮤지컬음악 등을 계속했다. 
그렇게 한 5년 하다가 보니까 대학로에서 뮤지컬도 하고, 전국 체전이라든지 굵직한 행사들에 음악감독으로써 참여를 했다. 
그런데 음악은 재미있었지만 돈을 벌려면 원하지 않는 음악도 해야 했다. 
아이돌 가수에게 곡을 주려면 그들이 원하는 것에 맞춰서 해야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내가 이러려고 음악을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음악은 주말에 만들고 회사 들어가서 돈을 벌면서 하고 싶은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그때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인 ‘하자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사회적 기업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하는데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하자센터에서 일을 시작했다. 
인정도 받고 의미도, 재미도 있었다. 
그래서 즐겁게 일을 했다.

유자살롱은 충한 씨가 기획해놓고 하자센터에서 계속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가 잘 돌아가지 않아서 충한 씨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유자살롱을 갈 것인가, 계속 하자센터에 있을 것인가. 
고민하던 그에게 하자센터의 센터장님은 그가 유자살롱 이야기를 할 때 행복해 보인다는 것을 알려줬다. 
자신이 행복해 하는 것을 스스로는 잘 몰랐던 것이다. 
국 유자살롱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거의 3년 동안 정말 행복하게 일했다.

의미 있는 일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니 행복해요

“저는 어떻게 보면 누구랑 일하느냐가 제일 중요한 게 아닌가 싶어요.”

누구랑 일하느냐는 결국 어떻게 일하느냐와 연결이 된다고 한다. 
국은 어떤 식으로 일을 하는지, 누구랑 함께 일을 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충한 씨는 그런 면에서 유자살롱이 자신한테 제일 맞는 동료들과 직장 문화, 일하는 방식을 갖고 있는 직장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굉장히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유자살롱은 충한 씨와 공동대표 한 명이 있고 뮤지션 두 명이 더 있다.
총 네 명의 멤버가 함께 일하며 모든 것을 회의를 통해 수평적으로 결정한다. 
모두 할 말 있으면 거리낌 없이 의견을 낸다.
물론 대표들이 더 열심히 고민하겠지만 모두가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행복해 하는 충한 씨는 무척 만족스럽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원들이 정말 이 일이 의미가 있다고 느껴야 한다.

유유자적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믿기에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 
뭘 하더라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 해서 잘하려고 노력을 한다. 
그래서 무중력 청소년 관련 회의를 하면 항상 엄청 싸운다고 한다. 
싸우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이 없거나 생각이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두 생각이 같다는 것은 다양성이 없으니 문제가 되고 생각이 없다는 건 실망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충한 씨는 치열하게 싸우고 토론하며 일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말한다.

좋은 일을 하며 돈까지 벌 수 있어요

사회적 기업은 돈이 안 되는 사회적인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 돈 버는 일은 조금 뒷전이었다. 
처음에는 노동부에서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 기간만큼은 이 사회적인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해왔다. 
대신 수익 모델은 만들어놨다. 
그중 하나는 멤버들이 함께 음반을 낸 것이다. 
‘유자사운드’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내고, 행사를 다니며 어느 정도 돈을 번다. 
또 자잘한 컨설팅 일들도 있다. 
지금도 서울 시에서 하는 사회적 창업 프로그램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수익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직장인예술대학’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직장인들이 일상이 너무 지루하고 힘들고 빡빡하니까 악기라도 좀 배워볼까 하는 생각으로 음악을 배우러 온다. 
그래서 한 10명 이상의 사람들을 모아놓고 굉장히 재미있고 압박을 주지 않는 음악 수업을 한다.

이렇게 해서 지금은 노동부의 지원을 받지 않지만 멤버들이 월급을 받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다. 
물론 월급이 많지는 않다. 
그래서 1~2년 내에 중소기업 정도 되는 월급을 만들어내는 게 목표라고 한다.

자신에게 맞는 템포를 찾으세요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건 사실이다. 
잘할 수 없는데 계속 열심히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꼭 남들보다 잘해야 하느냐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냥 자기가 즐겁고 잘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잘하기 위해서는 사실 좋아해야 한다. 
지금처럼 경쟁이 치열한 시기에서는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잘할 수는 없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려면 에너지가 훨씬 더 많이 든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서 꼭 이게 아니면 죽을 정도의 일이 아니라도 된다. 
마치 소울메이트를 기다리다 결혼을 못하는 사람처럼 그런 일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냥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한 일을 찾아도 된다. 
지금 나한테 제일 좋은 것을 찾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야 되는 일도 무시를 하면 안 된다고 충한 씨는 말한다. 
약 집안에 돈이 너무 없다면 돈을 벌기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남들이 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자기가 정말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게 중요하다.

“유자살롱에 오기 전까지는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많이 불행했던 것 같아요.”

충한 씨는 말한다. 
물론 돈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러나 충한 씨는 돈이 주는 행복이 그리 크지 않았다고 말한다. 
삼성카드 다닐 때는 보너스로 갑자기 큰돈이 들어오곤 했다. 
하지만 그날 하루만 즐거울 뿐 그 돈은 금방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은 하루하루가 모두 즐겁다.

3년 반 동안 무중력 청소년들을 만나면서 충한 씨도 많이 배웠다고 한다. 
삶에 대해서 많이 배웠다. 
처음엔 사람들도 잘 이해를 못했지만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심지어 학교 선생님들한테 유자살롱에서 하는 일을 이야기하면 ‘우리 학교에도 그런 애들이 조금 있는데’라는 말을 한다. 
학교를 다니는 등교형 무중력 청소년도 있는 것이다.

어른들은 ‘너는 왜 꿈이 없니’라는 얘기를 요즘 젊은 친구들한테 많이 한다. 
하지만 100살까지 살아야 하는 요즘 세상에서 소득에 대한 압박은 더 커진다. 
그러다 보니까 다들 꿈이라든지 열정이라든지 이런 거에 상관없이 안정적인 직업에만 몰리는지도 모른다. 
점점 젊은 사람들이나 아이들에게 미래가 없어지는 것이다.

유자살롱은 청소년들에게 선택권을 넓혀주고 싶다. 
다르게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어떤 직업을 가까이에서 뭔가를 보고 그게 좋다고 느끼면 청소년들은 거기에 끌릴 수도 있다. 
중력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행복해 보이는 어른을 만난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제일 중요한 건 행복한 어른들을 만나게 해주는 게 이 친구들의 중력을 회복시키는 일이라고 믿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과정을 겪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혹은 회사를 다니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기 심장의 템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유유자적이라는 말도 그런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너무 ‘빨리 빨리’ 하다 보니까 느리게 살아야 되는 사람도 빨리 갈 수밖에 없고, 반대로 빨리 살아야 하는 사람이 그 경쟁에서 뒤쳐져 느리게 사는 경우도 있다. 둘 다 불행한 것이다.
자기에게 안 맞는 일을 하며 굉장히 많은 것들이 가려지고, 힘든 마음으로 살게 된다.

음악이라는 게 딱 어울리는 템포가 있듯이 자기 심장의 템포에 조금 귀 기울이고, 거기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기 템포에 맞게 일을 하고 있으면 남의 얘기에도 귀를 잘 기울일 수 있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6883&curPage=1

목록보기

교육부 한국직업능력연구원 국가공인 웹 접근성 품질인증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