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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분야

(대안학교) 대안학교는 또 하나의 사회이다


한성호 창업가

강원도 출생의 한성호씨는 대안학교 ‘화랑고등학교’의 졸업생이다. 
중학생 때 이미 키가 183cm였을 정도로 덩치가 컸고 싸움을 자주 했던 그는 이른바 문제아로 불리는 청소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소록도로 봉사 활동을 갔던 그는 그 체험을 통해 아픈 사람을 돕고 싶다는 소명을 갖게 됐다. 
간호학과에 진학해 병원 응급실 간호사로서 4년간 일을 한 후, 환자를 대하는 마음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 그는 간호사를 그만두었다. 
현재 친구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총 실장으로서 관리와 운영을 돕고 있는 그가 들려준 그동안의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아버지가 대안학교에 보냈죠

중학교 1학년 때 신장이 183cm이었던 성호씨는 사고를 많이 치는 문제 학생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사고를 치는 아들을 걱정한 아버지는 어느 여름날 그에게 경주로 여행을 가자고 했다. 
단순히 여행인 줄 알고 따라 나선 그가 당도한 곳은 대안학교인 ‘화랑고등학교’의 모의면접 ‘여름학교’였다.

“친구들과의 헤어짐이 싫었기에 진학을 거부했지만 결국 면접을 보게 됐죠. 
그런데 선생님들이 술, 담배, 학교 폭력 등에 대해 자유분방하게 질문을 하는 거예요. 
학교 선배들이 때릴 수도 있는데 맞으면 어떻게 대처하겠느냐, 주량은 어떻게 되는지, 제 생각 그대로 얘기를 했는데 은사가 된 분이 ‘넌 이 학교로 와야 겠다’ 는 말을 했죠. 
하지만 그때까지도 대안학교는 가기 싫었어요.”

부모님은 진학을 거부하는 아들에게 고등학교만 나오라고 했고, 결국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취업을 하겠다는 결심으로 화랑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학교 안에서 인간관계를 배웠어요

요즘엔 생태지향형, 인문계열, 자연지향형 등의 특성을 지닌 다양한 대안학교가 존재한다. 
그러나 성호씨가 ‘화랑고등학교’에 입학한 90년대 대안학교의 설립 목적은 범죄를 일으켜 소년원에 갔다 왔거나 일반고에 진학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인성 교육을 통해 사회에 다시 환원시키려는 것이었다.

그가 다닌 ‘화랑고등학교’는 바깥에 흡연실이 설치되어 있을 만큼 학생들의 자율이 중요시 되는 한편, 선후배 관계가 엄격히 지켜지는 사회였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된 그는 학교에서 강압적인 선후배 관계 때문에 곤란을 겪은 적도 있었다. 
고학년의 규율이 절대적인 엄격한 계급 사회 속에서 그가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됐던 것은 선생님과의 관계였다.
대안학교의 선생님들은 학생이 먼저라는 생각을 갖고 학생의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행동했다.

“학교 자체가 지각이나 말썽에 연연하지 않고 학교를 나오는 것에 큰 의미를 뒀어요. 
마음공부나 텃밭 가꾸기, 요가처럼 일반 학교의 교육과는 전혀 다른 공부를 했죠. 
그러다가도 학생들이 지친 것 같으면 선생님들이 수업을 하지 않고 함께 여행을 가기도 했죠.”

학생들의 용돈을 담임선생님이 관리하며 필요할 때 마다 내주는 시스템 역시 학생과 선생 사이를 단순히 사제지간이 아닌 부모와 자식 간으로 느낄 만큼 가깝게 만들어 주었다. 
그 역시 1, 2학년 때 자신의 담임이었던 이국희 은사를 따랐다. 
공부에 뜻이 없던 그에게 선생님은 계속 동기부여를 했다.

“어릴 때 좀 놀다보면 더 이상 할 게 없어져서 공부를 찾게 돼요. 
선생님이 공부를 계속 시켜서 처음으로 시험공부를 좀 하고 잤어요. 
그 다음날 시험을 쳤는데 3등을 한 거예요.”

알 수 없는 성취감을 느낀 그는 선생님의 격려에 힘입어 공부하기 시작했다. 
후에 그가 대학 지망 학과를 고민할 때 정보를 알아봐 준 사람도, 운동엔 비전이 없다며 간호과를 지원케 한 사람도, 학교에서 사람들과 엇나갈 때 소록도로 보낸 사람 역시 그의 은사님이었다. 
그는 은사를 스승이기도 하지만 마치 친구 같은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원래는 간호사의 꿈이 없었어요

엄격한 선후배 관계에 있어 그는 선배의 말을 무작정 따르는 후배는 아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선배와 큰 트러블을 일으킨 사고로 학교에선 성호씨에게 무기정학을 내렸다. 
‘화랑고등학교’의 무기정학은 학생을 집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봉사 활동을 보내는 것이었는데 무기정학을 받은 그는 나병환자들이 있는 소록도에 봉사 활동을 가게 되었다. 
소록도에서 폐쇄 병동 환자들에게 봉사하며 지낸 4개월이 끝나갈 때 쯤 그는 의무로 했던 봉사에서 보람을 느꼈다. 
사람을 돕는 것에서 성취감을 갖게 된 것이다.

“얼굴이 썩어서 입이 아닌 관을 통해 식사 하시는 할머니가 있었어요.
그 할머니가 양말을 뜨려면 2년이 걸리는데 제가 떠나기 전 날, 저에게 양말 한 켤레 주시는 거예요. 
2년 동안 뜨신 거였죠. 
그걸 받고 많이 울었어요.”

어릴 때 운동을 했기에 막연히 대학에 가게 된다면 경호학과나 생활체육과를 쓰려 했던 그는 봉사 활동을 계기로 진로를 간호학과로 돌리게 되었다. 
은사 덕분에 공부를 해 내신 성적이 나쁘지 않았던 그는 사회복지과, 간호학과, 경호과에 입시 원서를 제출했다. 
남자 간호사라는 직업은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약간의 편견을 주는 직업이지만 그가 대학을 진학할 당시에는 더 심했다. 
그 역시, 친구들의 비난과 자신이 과연 여성 위주의 간호사 사회에서 제대로 적응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간호과 지원을 망설였다. 
그러나 부모님의 적극적인 찬성과 운명 같은 입시 결과가 결국 그를 간호과에 진학하게 만들었다. 
간호학과의 커트라인 점수가 경호과보다 월등히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간호학과 합격, 경호과 불합격이라는 결과를 얻었던 것이다.

간호사란 직업에 지쳐갔죠

전문대 간호과에 진학한 성호씨는 국가고시를 합격하고 간호사로써 병원 응급실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응급실은 환자의 생사를 제일 처음 보는 장소이기 때문에 누가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긴장상태로 대기해야 했지만 그는 학생 시절 간호 실습 때부터 오로지 응급실 근무만을 생각했다. 
활동적이고 다소 성미가 급해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는데서 얻는 성취감을 중요시여기는 성격 때문이었다. 
호전적인 성격의 그지만 간호사 근무 4년차가 되었을 때 간호사란 직업에 회의감을 느끼게 됐다.

“병동 같은 경우엔 준비된 환자를 받아서 준비된 상태에서 케어를 하지만, 응급실은 스트레스가 많았죠. 
일단 죽어 나가는 사람을 계속 본다는 게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죽음에 무덤덤해지기 시작했어요. 
내가 바쁘니까 조금 아픈 사람보다 많이 아픈 사람을 위로 생각하고, 환자를 그냥 빨리 치워야 하는 일거리로 보기도 하는 자신을 발견했을 땐 많이 혼란스러웠어요.”

여동생의 결혼으로 생긴 집안일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 일을 쉬던 가운데 자궁암 선고를 받은 어머니의 간호를 직접 하기 위해 간호사 일을 그만두었다.

“간호사를 하게 되면 끝을 봐요.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안 좋은 특징이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얘기하는 거죠. 
그러다보니 마음이 항상 좋지 않았죠.”

나중에 제 가게를 차리는 게 목표에요

성호씨가 어머니 병간호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잠시 접어둔 그 때, 서울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자신이 창업한 식당 관리를 부탁하는 전화였다. 
같은 중, 고등학교 출신의 고향 친구 1명과 성호 씨의 군대 후임이 동업을 해 열게 된 프랜차이즈 식당이었다. 
간호사를 그만두기 1년 전부터 창업의 꿈을 품고 있었던 그였기에 그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전국 10개의 점포 중 오픈한 얼마 안 된 가게에서 성호 씨는 총 실장을 맡게 됐다. 
대안학교에서 쌓은 인간관계와 인간 관리 노하우로 직원들을 관리하고 장부와 재정 관리 일을 주로 하고 있다. 
비즈니스로 자주 못 오는 사장의 역할을 대행하고 있는 지금, 그는 이 지점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최대한의 도움을 줄 생각이다.

“이 친구들은 서로 계속 동고동락 한 사이이고 제가 힘들 때 많이 도와줬던 은인이기도 해요. 
거기에 어차피 나중에 제 가게를 창업할 생각이기 때문에 돈을 받고 배우기도 하는 지금 일이 좋은 경험이라 생각해요.”

해산물 요식업을 생각 중인 그는 창업 아이템을 계속 연구하며 소비자에게 정직함으로 승부하는 창업을 준비를 차차 해나갈 계획을 갖고 있다.

대안학교는 또 하나의 사회에요

“대안학교에서 저는 선후배 관계, 상하관계, 평등한 관계 등 다양한 사회를 경험했어요. 
관계 속에서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떤 식의 행동을 해야 하는지 등도 많이 배웠죠. 
나밖에 모르던 상황에서 남을 계속 지켜 봐야하는 입장으로 거듭나게 된 거예요.”

성호씨는 선생님들이 강압적인 선후배 관계에 개입하지 않은 것도 실제 사회의 냉혹함을 알려주려는 의미였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덕분에 그는 그곳에서 사회를 살아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성실함과 첫인상의 중요성을 배우게 됐다. 
아마 대안학교에 가지 않았다면 뉴스에 나왔거나 부모와의 연을 끊었을지도 모른다는 그는 대안학교가 네모처럼 잔뜩 모나있던 자신을 둥글게 만들어 준 곳이라 감사와 신뢰를 표했다.

목표를 향하는데 마주치는 샛길을 겁내지 말고 부딪쳐야 한다

성호씨는 인생에 있어 최종 목표를 바라보기 보단 자기가 현재 노력할 수 있는 목표들에 집중했다. 
그 목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단계를 이루어 그가 진심으로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단 얘기다.

“사람들은 대개 10년 뒤, 20년 뒤를 생각하며 큰 꿈을 가져야 큰 사람이 된다고 하지만 저에겐 별로 와 닿지 않아요. 
제 현재 목표는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고 노후 준비를 해드리는 거예요. 
지금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게 부모님을 챙겨드리는 일이라면 그 일의 끝까지 도달한 뒤엔 또 다른 목표를 향한 또 다른 단계가 생기겠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목표가 단계별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인생이란 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아요. 
어떤 길로 새고, 또 다른 길로 새고, 여기저기로 새지만 어차피 자기가 가는 도착점은 존재하겠죠. 
살면서 무수히 많은 샛길을 걸을 텐데 겁내지 말고 부딪쳐 봤으면 좋겠어요.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만 다 한다면 결국 도달하고 싶은 도착점에 도달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159&cur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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