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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분야

(과학) 셜록’ 좋아하던 의대생에서 법의관의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정하린 법의관

“어릴 때부터 추리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특히 논리 구조가 돋보이는 작품을 좋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어떤 이야기가 가장 재밌었는지 꼽으라면 어려워요. 
‘주홍색 연구’, ‘바스커빌가의 개’ 등 모두 명작이에요.”

정하린 법의관을 원주에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본원에서 만났다. 
어려서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했던 까닭일까. 
그는 과학고를 다니던 시절에도(당연히 이과생이었다) 문과인 법대로 진학하는 자신을 꿈꾼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요즘엔 ‘화차’, ‘모방범’으로 유명한 일본 추리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즐겨 읽는다는 그는 법관 대신 법의관이 돼 자신만의 방식대로 학창시절의 꿈을 실현했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서 법의관이 되다

“의대를 졸업한 뒤, 병리과 레지던트 시절 국과수에 파견을 나온 적이 있어요. 
그때 법의관이 하는 일을 가까이서 보다가 그만 그 일에 매료됐죠.”

법의관이 하는 주 업무는 이미 잘 알려져 있듯 시신을 보고 사인을 찾아내는 일이다. 
시신은 의대 재학 중에도 이미 볼만큼 봤을 그가 갑자기 법의관의 일에 매료된 까닭은 뭘까.

“병원에서 병리과는 주로 시료를 받아 현미경으로 보며 분석하는 일을 해요. 
어떤 의미에선 실험실 연구원과 비슷하죠. 
그런데 국과수 법의관은 경찰, 유족과 소통할 수밖에 없더라구요. 
앉아서 맡은 일만 하기보다는 외부와 소통하는 모습에 끌렸고, 법의관이라는 직업이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그렇다고 국과수에 파견 온 모든 병리과 레지던트가 법의관이 하는 일에 매료되는 것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과학고에서 법학과 진학을 꿈꿨던 그만의 ‘경력’ 때문에 법의관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이 아닐까. 
정 법의관은 이런 질문에는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가 법의관으로 첫 발을 내디뎠던 2011년, 불과 3년 전이지만 당시만 해도 법의관이란 직업에 대한 인식은 썩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법의관은 죽은 시체를 들여다봐야만 하는 직업이었다. 
체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원초적인 두려움 외에도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다.

검안(檢案)을 하고 때론 부검도 해야 할 시신이 ‘곱게 죽은’ 시신이란 법도 없었다. 
추락사한 시신은 추락과정에서 절단이 일어나기도 했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시신 역시 훼손이 심한 경우가 잦다. 
그가 법의관이 되겠다고 했을 때 교수님과 동기, 선·후배들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고, 무엇보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그가 여성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당시 부모님에게 법의관은 여성이 하기엔 험한 직업이었어요. 
제 인생에서 처음 부모님의 뜻을 거스른 결정이었어요.”

그러던 중 법의관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2011년 드라마 ‘싸인’이 성공하고 나서부터다. 
정 법의관은 “드라마 덕분에 법의관이 시신을 훼손하는 직업이 아니라 진실과 정의를 파헤치는 직업이란 인식이 퍼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반대하셨던 부모님도 드라마를 보고 난 뒤부터 딸에게 응원을 보내신다고.

법의관이 쓰는 감정서 한 줄의 무게

정 법의관의 일과는 부검실에서 시작한다. 
오전 10시 강원도 원주의 문막 부검실에서 부검을 마치고, 약 30분 거리에 있는 국과수 본원으로 돌아와 감정서를 작성한다. 
부검은 한 달간 평균 20건 정도 있다. 
간혹 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논문을 쓸 때도 있다.

부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시신의 상태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론 1시간 내외이지만 사고 등으로 인한 외인사는 2~3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의료사고가 의심되는 시신의 경우에는 이보다 더 걸린다. 
그의 감정서 내용에 따라 환자의 사망원인에 대한 병원의 과실이 인정되기도 하고,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병원의 과실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 유족들로부터 전화를 받을 때가 많아요. 
가끔은 협박 전화가 오기도 하고, 편지도 받습니다. 
고소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1년에 한두 번은 민원이 접수되기도 합니다.”

그는 부검과 감정서 작성 외에도 민원인을 상대하는 것 또한 법의관이 해야 할 어려운 일 중 하나라고 털어놓았다. 
국과수 고문변호사가 있긴 하지만 변호사가 이를 모두 처리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목숨은 물론 책임 소재가 달린 일이 빈번한 만큼 민감한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는 뜻이다.

의료사고 외에도 통화하기가 꺼려지는 민원인이 있다. 
바로 자살한 자식을 둔 부모다. 
법의관인 그에게 부모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정해져있다고 봐도 된다. 
대개의 부모는 자식의 자살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법의관이 ‘이 아이는 자살한 게 아닙니다’라고 말해 주길 원한다.

“사실 도움을 줄 방법이 별로 없다는 게 가장 가슴 아파요. 
제가 쓰는 감정서에는 죽음에 이르게 된 직접적인 이유(과다출혈, 질식 등)가 적혀있지, 타살인지 자살인지는 적혀있지 않거든요. 
경찰과 말씀을 나눠보라고 하는 게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의 전부죠.”

감정서 작성에 대한 부담은 없을까. 
그가 쓰는 한 줄에 따라 사망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물론 거액의 보험금이 왔다 갔다 할 수도 있다. 
유족들의 마음 또한 마찬가지다.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어요. 
자신에게는 물론 누가 봐도 떳떳한 결과를 내놓아야 하거든요.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정말 힘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땐 동료 법의관들에게 털어놓습니다. 
서로 비슷한 처지에 있으니 그만큼 이해해주는 사람도 없고 의지도 많이 됩니다.”

법의관도 ‘이럴 땐’ 시신이 무섭다?

정 법의관을 처음 만난 건 올해 4월이었다. 
언론인의 과학수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마련된 연수 프로그램에서 그는 강사로 나왔다. 
양하게 죽은 시신들의 특성을 감정의 동요 없이 태연하게 설명하는 정 법의관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시신에 대한 거부감은 사실 의대 재학 중 상당부분 없어졌어요. 
매일 시신을 마주해야 하는 게 직업인만큼 무서워하거나 거부감이 심해서는 이 일을 하기가 어렵죠.”

하지만 법의관 4년차인 그도 시체에 대한 두렴을 완전히 떨쳐낸 건 아닌 듯싶다.

“아무래도 사무실에서 혼자 야근할 땐 가끔 오싹할 때가 있어요. 
특히 불 꺼진 부검실로 혼자 들어갈 때의 기분이란…”

또 그는 모든 법의관이 시신에 익숙해지는 건 아니라고 덧붙였다. 
업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신과 마주하는 일을 쉽지 않게 여기는 법의관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그도 혀를 내둘렀던 사건이 있었다. 
조선족 오원춘이 한국인 여성을 살해한 뒤 무참하게 토막 내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던 2012년 수원 토막살인 사건이 그것이다.

정 법의관은 피해 여성의 부검 작업에 참여했고, 부검에만 꼬박 5시간 이상 걸렸다. 
살점 수가 200조각이 넘었고, 사인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작은 살점에 남은 멍 흔적 하나라도 놓쳐선 안 됐다.

끈질긴 조사 끝에 결국 국과수 법의관들은 사인이 ‘경부압박 질식’이라는 사실을 극적으로 밝혀냈다. 
국민의 관심이 쏠렸던 만큼 부검을 함께 한 동료들과 회포를 풀 시간도 없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법의관은 이런 사람들

“의사 커뮤니티와 법의관의 커뮤니티에는 조직 문화라고 할까요, 그런 차이가 있어요. 
의사 커뮤니티가 좀더 도제식이고 수직적이라면 법의관 조직은 좀더 수평적이고 동료라는 의식이 더 강합니다.”

정 법의관은 법의관 사이에도 선후배 관계가 있지만 수평적이고 서로가 전문가임을 인정해주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특히 직접 부검한 시신에 대해서는 집도한 법의관의 판단을 존중해준다고 덧붙였다.

“법의관들 중에는 예술적인 취미를 가진 분들이 많아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고 악기를 다루는 사람도 있죠.”

하지만 정작 정 법의관의 취미는 친구들과 모여 수다를 떠는 것과 추리소설을 읽는 것이다. 
최근 본 영화로는 톰 크루즈가 주인공을 맡은 SF 블록버스터 ‘엣지 오브 투머로우’ 정도다.

직업특성상 시체에 익숙한 만큼, 피와 살이 난무하는 하드고어 영화는 시시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일하면서도 보는 걸 굳이 여가 시간에 또 보고 싶지 않아 아예 즐기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정 법의관의 꿈은 ‘좋은 법의학자’가 되는 것이다. 
좋은 법의학자의 의미에 대해 묻자 그는 조금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어갔다.

“한 분야의 전문가인 만큼 체계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틀린 감정결과를 내놓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죠. 
꾸준히 공부해서 나날이 발전하는 법의학자가 되고 싶고, 유족들에겐 늘 친절한 법의학자도 되고 싶어요. 
또 자기성찰을 통해 성숙한 법의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는 시신을 마주할 때마다 자기성찰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인지’도 고민한다.

“시신을 살피다보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단서가 보일 때가 많아요. 
눈에 잘 띄는 것으로는 문신이 있고, 손톱은 어떻게 길렀는지, 이 흉터는 왜 생긴 것인지 등이죠. 
이 일을 오래할수록 이런 단서들이 더 많이 보이는 거 같아요.”

정 법의관은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 
그의 종교는 기독교다.

“법의관 중에는 기독교인이 많아요. 
법의관이라고 특별한 건 없어요.
독실한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고. 
대부분의 직업이 그렇듯 법의관도 종교가 꼭 필요한 직업은 아닙니다.”

법의관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부모님은 여성이 하기 힘든 직업이라고 처음에 생각하셨지만, 저는 여성에게 나쁘지 않은 직업이라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공무원이다보니 출퇴근 시간과 주말이 보장돼요. 
의사는 그렇지 않거든요.”

정 법의관은 수입과 대우 면에서도 예전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다만 가족이나 배우자가 이해해줬으면 하는 게 있다고 강조했다.

“직업 특성상 매스컴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요. 
특히나 끔찍한 사건과 엮일 때가 많지요. 
이 점은 꼭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법의관이 되기 위해 미리 관심을 갖거나 공부해야 할 건 없을까. 
는 “의학지식이나 전문지식은 대학교에 와서 배워도 전혀 늦지 않다”며 “가능한 다양한 책을 많이 읽어 두루두루 지식을 많이 쌓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업무 중 만나는 시신들이 다양한 삶을 겪어온 사람들인 만큼 정확한 감정을 위해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지식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는 법의관을 평생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재미를 느끼고 의미를 찾는 한 계속 해나갈 생각입니다. 
물론 업무 강도는 엄청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성은 물론 세계 유수기관과 그 수준을 나란히 하는 대한민국 국과수에서 함께 일할 각오를 가진 후배 분들을 기다립니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7116&cur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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