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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분야

(과학) ‘나만의 우주’ 발견하실래요?


심채경 경희대 우주탐사학과 연구원

장마가 끝난 맑은 오후, 주택이 빼곡한 작은 동네의 한 건물 4층 옥상에서 한 소녀가 하늘을 바라본다. 
파란 하늘이 이어지다 지평선과 만나는 지점에서 빨간 노을이 아름답게 번지고 있다. 
하늘에 드리운 얇고 투명한 천 같다. 
소녀는 과연 지상의 그 무엇이 하늘보다 더 아름다울까 생각한다. 
그리곤 하늘 너머 공간을 궁금해 한다. 
천공은 말 그대로 비어 있는 공간일까. 
무언가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닐까. 
혹시 하늘에 길이 있어서, 그 길 위로 천체가 움직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늘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으로 가슴이 꽉 차오르던 소녀는, 머지 않은 미래에 하늘과 그 저편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리라고 예감한다.
그것도 천공에 있는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움직이는, 작고 외로운 천체인 위성(달)을 연구하는 천문학자가.

심채경 경희대 우주탐사학과 연구원(32)은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위성을 전공한 천문학자다. 
토성 제1의 위성이자 태양계에서 두 번째로 큰 위성인 타이탄이 박사학위 주제다. 
두터운 대기가 있고 액체 메탄이 비처럼 내리는, 어쩌면 생명체가 살지도 모르는 신비로운 천체를, 심 박사는 엄밀한 과학의 언어를 이용해 그려내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하늘 밖이면 다 똑 같은 우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천문학자에게는 그렇지 않다. 
먼 우주인 은하와, 태양계로 대표되는 가까운 우주로 나뉜다. 
둘은 연구 방법이 많이 다르다. 
먼 우주는 관측밖에 방법이 없지만, 태양계 안의 천체는 탐사선을 보내거나 달처럼 직접 방문해볼 수 있다. 
하지만 연구자가 더 적은 쪽은 의외로 태양계다. 
태양계에서도 태양을 연구하는 학자가 더 많고, 나머지 천체를 연구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 중에서도 지구나 화성, 목성 같은 ‘행성’이 아니라, 행성에 딸린 위성을 연구하는 사람은 손에 꼽힌다. 
심 연구원은 이렇게 소수 중의 소수가 택하는 주제를 전공으로 택해 외길 인생을 걷고 있다.

집중하는 자에게 행운도 따른다

“저 집요해요. 
어려서부터 어떤 사실에 대해 묻거나 찾아내는 것을 좋아했어요. 
관심이 가거나 마음에 드는 게 생기면,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열 일 제치고 달려들었죠.
학교 시험 같은 건 오히려 안중에 없었어요.”

어떻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택했냐는 질문에, 심 박사는 어린 시절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요함과 끈기가 자신을 연구자로, 그것도 소수가 택하는 보기 드문 주제의 천문학자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심 박사는 무척 가녀리다. 
이야기할 때도 환한 얼굴로 눈이 초승달이 되도록 웃으며 이야기한다. 
고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은 부드러운 모습인데, 어려서부터 집요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학생 때 지도를 그려오라는 숙제가 있었어요. 
약 10분이면 끝낼 수 있는 쉬운 숙제였죠. 
그런데 제가 신기해서 그림을 쳐다보다 ‘필이 꽂힌’ 거예요. 
교과서와 참고서의 지도가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지도를 그리고 싶어졌죠. 
백과사전과 책을 모두 뒤진 끝에, 결국 가장 정확하고 훌륭한 지도를 찾아 상세히 그려 숙제를 완성했어요. 
세 시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잘 그린다고 점수를 잘 주는 숙제가 아니었는데, 제겐 점수보다 궁금증을 푸는 게 더 중요했나 봐요.”

조용하지만 내면만은 꽤나 특이했던 어린 심 연구원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지구과학 과목이었다. 
담당 선생님이 특이해서 심 연구원의 ‘집요함 코드’를 건드린데다, 어린 시절 노을을 바라보며 느꼈던 하늘에 대한 경이감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대학에 진학할 때 학과는 자연히 우주과학과로 정해졌다.

“천문학은 수능 성적에 따라 학교 순위가 정해지지 않는, 몇 안 되는 과학 분야예요. 
학교별로 집중하는 분야나 분위기가 다 다르기 때문에 분야를 보고 학교를 선택할 수 있죠.”

그가 진학한 경희대 우주과학과는 독특했다.
인공위성으로 대표되는 우주공학이 한 축을 이루고, 우주과학과 천문학이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궁금한 것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에 지구과학을 좋아했던 취향이 더해져, 심 연구원은 자연히 천문학 쪽에 관심을 가졌다. 
학부를 졸업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학자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려움과 두려움을 겪는다. 
앞에서 끌어주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어려움과, ‘내가 가는 길이 맞을까’라는 두려움이다. 
과학에도 돈 되는 분야, 보다 편하고 인기 있는 분야가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를 택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어지간한 용기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심 연구원도 당연히 이런 어려움과 마주쳤다. 
하지만 그는 “비교적 수월하게 극복했다”고 말한다.

“운도 좋았어요. 
막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였어요. 
미국의 탐사선 카시니-하위헌스 호가 토성에 도착했죠. 
토성과 그 위성을 방문한 이 탐사선은 곧 새로운 관측 자료를 대거 쏟아내기 시작했어요. 
자연히 그 자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그게 결국 전공이 됐고요.”

태양계 연구는 지상의 관측과 함께 탐사선이나 방문 연구가 중요하다. 
특히 탐사선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연구자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마침 타이탄에 탐사선이 도착했다는 것은 천운에 가까운 기회였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수십 년 동안의 태양계 탐사 경험이 있는 미국은 탐사선의 자료를 요즘과 다른, 그들만 알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자료로 저장했다. 
디지털 세대인 심 연구원은 파일을 여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어지간한 자료는 관측 1년 뒤에야 공개하는 미국의 애매한 관용(?)도 어려움에 한몫 했다. 
이미 중요한 연구는 미국의 연구자들이 다 한 뒤기 때문에, 심 연구원은 그들이 비껴간 틈새를 노려야만 했다.

“그래도 아주 흥미로운 연구를 했어요. 타이탄은 행성 중 유일하게 짙은 대기가 있어요. 
그런데 그 성분이 복잡해요. 
칼 세이건은 이 물질을 뭉뚱그려서 그저 ‘솔린’이라고 불렀는데, 그 성분을 최근까지 분석했어요.”

타이탄의 대기에 관심을 갖는 건 타이탄이 외계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유력한 후보기 때문이다. 
메탄이라는 유기물과 대기에 가득한 황사 비슷한 먼지는 유기체가 탄생할 조건을 제공해 준다. 
일부 우주생물학자들은 인류가 지구 밖에서 외계 생명체를 찾는다면, 타이탄이 첫 번째 천체가 되리라고 예상할 정도다. 
심 연구원의 연구는 외계 생명체를 찾는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여성, 어머니, 그리고 과학자

심 연구원은 30대 초반의 젊은 학자지만, 이미 6년의 짧지 않은 경력을 지닌 ‘엄마’다. 
석사 과정에 있을 때 일찌감치 결혼했고, 지금은 매사에 호기심이 많은 딸과 남편과 함께 행복한 가정 생활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흔히 이공계 학자들은 낮밤이 없고 주중과 주말의 구분이 없는 불규칙한 생활을 한다. 
학생 신분으로 가난하기도 하다. 
결혼을 결심하는 데 망설임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심 연구원은 “제가 집요할 뿐만 아니라 뻔뻔하기도 해서…”라며 웃었다.

“학생이라 돈은 없었지요. 
하지만 공부하는 것도 어엿한 직업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떳떳하게 행동했어요. 
어차피 저는 계속 공부할 예정이었기 때문에(이 말을 할 때 심 연구원의 표정에는 집요함을 이야기할 때 떠올랐던 표정이 스쳤다) 미룰 이유도 없었고요. 
그랬더니 오히려 친정과 시댁의 부모님들도 이해하고 지지해 주시더군요.”

하지만 결혼은 확실히 생활의 변화를 요구했다. 
아기까지 생기니 더욱 그랬다. 
더 이상 밤 늦게까지 자료를 들여다보거나 컴퓨터와 씨름할 수 없었다. 
회사원처럼 아침에 일정한 시간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생활로 바꿨다. 
낮에 집중해서 일하고, 밤에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내 익숙해졌다. 
딸이 걷기 시작한 이후에는 연구실과 세미나실에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어른도 이해하기 힘든 외계어가 난무하는 천문학 세미나에 막 걷기 시작한 아기를 데려올 생각을 하다니! 
데리고 온 엄마 심 연구원도 특이하지만, 세미나실에서 얌전히 앉아 구경을 하는 딸도 만만치 않다. 
“혹시 천문학 영재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라는 질문에, 심 연구원은 “설마요”라고 웃으면서도 딸 ‘자랑’을 잊지 않았다.

“제 딸이 비록 내용은 이해 못하지만, 제가 발표하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 덩달아 좋아해요. 
집에 가면서 ‘참 좋은 이야기였어’라고 칭찬도 하고요. 
가끔은 제가 하는 연구를 궁금해 해서 사진을 보여주는데, 얌전히 그림 감상을 한답니다.”

많은 여성 과학자들에게는 두려움이 있다. 
결혼과 출산 때문에 연구나 학업의 리듬을 잃고 슬럼프에 빠지거나, 자칫 과학자의 이력 자체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실제로 많은 여성 과학자들이 경력 단절의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런 초보 여성 연구자들에게 심 연구원의 사례는 중요한 참고가 된다. 
슬기롭게 결혼과 육아 초기를 극복하고, 본격적인 연구자의 이력을 성공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경력 단절 문제는 전문 연구자나 대학원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에는 과학자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조차 염려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하다. 
심 연구원은 지난 2014년 6월, 대중과 만나는 과학 토크콘서트 행사 ‘과학동아 카페’에서 인상적인 경험을 했다. 
행사가 끝나자 한 무리의 여고생들이 심 연구원을 가득 에워싼 것이다. 
질문 공세가 이어졌는데, 놀랍게도 상당수 질문이 “여성인데 과학자로서 활동하는 게 어렵지 않나요?” “결혼하고 아이 키우면서도 연구할 수 있나요?” 등 경력 단절과 관련한 것이었다.

심 연구원은 그 때 어린 여학생들이 여성으로서 받게 될 차별이나 한계 등에 대단히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껏 꿈꾸고 제한 없이 상상해야 할 시기지만, 걱정부터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는 사실도 새삼 느꼈다. 
더구나 여성이자 어머니인 심 연구원을 배려하기 위해 무심코 던진 말에서도 때론 상처를 받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일찍 들어가 봐야지. 가서 밥도 해야 하지 않아?” 같이, 의도는 선하지만 결과적으로 차별이 될 수 있는 말을 듣고 분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니, 여성이기 때문에 좀 더 유리한 점도 분명 있어요. 
저는 오히려 그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

직업이 회사원이 아닌 연구자다 보니 가족 중심으로 시간표를 짜는 데 유리했다. 
시간을 융통성 있게 활용할 수 있었다. 
여성 연구자가 소수다 보니, 외국의 학회에 나갈 경우 다른 과학자들에게 기억되기 쉽다는 장점도 있었다. 
협력이 중요한 과학 분야에서, 상대방에게 기억된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듣고 보니 별 것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꽤 큰 장점 같기도 하다. 
결국은 당사자가 어떻게 긍정적으로 활용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심 연구원은 천문학자를 꿈꾸는 여학생들에게 해줄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다시 한번 “하고자 하는 뜻만 있다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해나가라는 격려였다.

혹자는 심 연구원이 성공적으로 어려움을 이겨냈기 때문에 쉽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본 심 연구원은 결코 그렇지 않다. 
아무리 어린이집 등을 활용했다고 하지만, 아기를 맡길 곳이 없어 난처한 날도 분명 있었다. 
막 걸음을 걷는 아이를 업고 연구실로 출근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그런 결심을 하기가 어떻게 쉽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는 결코 ‘여성 과학자로 살아가기’가 간단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헤쳐나갈 수 있다고 말했을 뿐이다. 
노을을 보며 하늘과 우주를 꿈꿨던 소녀는, 이제 막 막연한 동경을 넘어 구체적인 삶 속에서 하늘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위성과 달 연구자로서의 심 연구원의 ‘우주’는 이제 막 발견됐다.
출처커리어패스   https://www.career.go.kr/path/board/case/view.do?bbsSeq=126996&curPage=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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